About ODS
일상에서 서비스하는 비일상의 순간
‘적당함' 은 어떤 맥락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달라질 수 있는 흥미로운 단어입니다. 누군가에겐 적당함은 그저 그런 모자람, 다른 이에겐 ‘이 정도면 됐어' 하는 충분함을 뜻할 수도 있죠. 가구 브랜드 ODS 에게 적당함은 더 이상 더하거나 뺄 필요가 없는 정도의 관용적인 정도를 뜻합니다. 단어가 가진 널럴한 뉘앙스처럼, 누구에게나 똑같은 핏으로 받아들여지길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맥시멀리스트, 미니멀리스트, 그저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 누구에게든 적절한 위치에서 적당히 아름답길 바라는 여유로움이 ODS 의 태도입니다. 딱 거기 어딘가, 가 아니라 그냥 대충 어디 놔도 아름다운 그런 상태를요.
오디너리 서비스의 뜻은 단어 그대로 ‘일상의 서비스' 입니다. 우리는 일상을 대체로 건조하고 퍽퍽한 것, 규칙대로 흘러가는 무미건조한 것으로 느낄 때가 많죠. 어딘가 맞추어진 틀 안에서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해내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 시간과 시간을 사용하는 공간만으로 일상이 가득 찹니다. 브랜드가 사용자의 시간까지 컨트롤할 순 없지만, 최소한 공간과 이를 둘러싼 느낌, 경험의 중요한 일부분은 채워줄 수 있다고 믿어요. ‘서비스' 는 이런 의미입니다. 호텔같은 비일상이 아닌 일상 안에서도 충분히 서비스받고 있다는 일상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 오디너리 서비스는 이런 ‘비일상의 순간' 을 만드는 일상의 가구를 만듭니다.
“ ‘처음 보는 디자인 같은데 왠지 모르게 친숙하네?’
이런 생각이 든다면 충분하죠.”
합리적인 가격의 오리지널 가구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시장은 한국답게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은 과도기의 느낌이 강합니다. 일반적인 커머스 플랫폼에서 가구를 구입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 때가 있는데요. 조금이라도 가구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90% 이상의 상품이 오리지널의 카피 상품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좋은 제품이 레플리카로 보편화되는 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리지널 디자인을 가진 가구가 무단으로 카피되어 온갖 공장에서 생산되어 마치 자신들이 만든 거처럼 둔갑하는 건 반길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리지널 가구들은 그 좋은 디자인과 높은 퀄리티 답게 높은 몸값을 자랑하니, 보통의 사람들은 카피인 걸 알고서도 적당한 가격의 상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ODS 는 오리지널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 제품을 직접 디자인하고 직접 생산합니다. 그러면서 누구나 ‘조금만' 무리하면 살 수 있는 가격대에 자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상업 디자인에서 가격도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ODS 는 누구나 언제든 살 수 있는 저렴한 가구를 지향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그 가격대에서는 만들 수 있는 디자인과 퀄리티가 심하게 제약되기 마련이니까요. 가구는 매일 사는 물건은 아니고, 오히려 한 번 사면 최소 몇 년에서 어쩌면 대를 이어가며 사용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 시간의 가치를 생각하며, 좋은 퀄리티의 조금만 무리하면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의 적당한 오리지널 가구. ODS 가 지향하는 지점입니다.
아르데코와 미드센추리 사이 어딘가
ODS가 직접적으로 모티브삼고 있는 디자인의 원형은 아르데코와 미드센추리 사이, 아직 수공예적 특성이 남아 특유의 조형성과 디테일이 아름답게 남아 있는 흔적 위에서 ‘장식을 위한 장식' 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던 미드센추리 디자인의 노력이 함께 녹아든 찰나의 시간입니다.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디자이너로는 아돌프 로스 Adolf Loos 가 있고요. 유럽 지향적인 디자인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기능성과 그에 입각한 적절한 조형성, 그 위에서 춤추는 색과 디테일이 아름다운 디자인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요. 이는 그 자체가 ODS의 시각에서 볼 때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 더 깊숙하게는 그렇게 ‘최소한의 장식성이 있는 디자인' 이 모두의 일상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거의 광풍이라 할 만큼 한바탕의 유행이 지나간 미드센추리 디자인은 장식을 위한 장식, 허영과 포장을 걷어내고 보다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디자인 경향이었어요. 그런 디자인이 당대에 이르러 장식을 위한 가장 좋은 오브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좀 슬프지만요. 그리고 그 경향의 끝단으로 가면 미니멀이 나타납니다. 지금 한국의 아파트 인테리어에서 가장 익숙한 풍경, 소위 ‘무문선' 으로 통일되는 화이트톤의 인테리어가 그 경향의 연장선상에 있죠. 물론 디자인에 정답은 없고, 심미성은 취향의 영역이지만, ODS는 극단의 미니멀 디자인이 한편 극단의 장식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의 번잡스러움이 삶의 아름다움이 되는 지점
극도로 미니멀한 공간 안에서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기 어렵습니다. 치밀하게 짜여진 레이아웃과 먼지 한 톨 없어야 아름다운 공간 안에서, 사람과 사람의 생활감 자체가 이물질이 되기 때문이죠. ODS는 이것이 ‘정신적 장식' 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생활이 생활로서 아름답기 위해서는, 생활감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생활감을 품어주는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믿어요. 그리고 이를 위해선 ‘적당히 지저분해도' 아름다울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아르데코 시절의 수공예적 장식성이 보다 인간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지점은 이 부분이에요. 적절한 장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지저분함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가방 하나, 자켓 하나 정도는 그저 귀찮아서 툭 던져 놓아도 큰 티가 나지 않고, 되려 그게 연출처럼 보이는 아름다움의 구성이 좋다고 생각해요.
아르데코와 미드센추리 사이 기간은 거의 찰나에 가까울 정도로 짧습니다. 더군다나 미드센추리 디자인의 영향력과 파급력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그 빛의 그림자에 가려진 어두운 시간에 가깝죠. 그러나 ODS는 대체로 아름다움은 어떤 과도기, 찰나의 순간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며, 시적 아름다움에는 인간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과도기가 아름다운 이유는 오래된 시간과 새로운 시대가 만나는 찰나의 사이, 물감이 물에 퍼지는 순간처럼 역동적이고 조화롭지만 곧 사라지고 말 그 순간 자체이기 때문이에요. 다행히 디자인은 그 순간을 형태로서 붙잡을 수 있는 도구이고, 윤슬처럼 반짝이는 순간을 사진처럼 담아 오래도록 삶 속에 존재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ODS의 미학성은 이 찰나의 순간에 기반합니다.
분명히 처음 보는데 왠지 모르게 익숙한 것
무언가 멋진 새로운 것을 처음 볼 때의 놀라움과 생경함의 힘은 대단히 큽니다. 사람과 공간, 가구 어떤 것에도 그 첫 인상은 끝까지 남아 그 경험의 에센스가 될 가능성이 커요. 반면 필연적으로 그 낯섬은 불편함을 동합니다. 반면 익숙하고 편안한 것은 아무리 오랜 시간 곁에 있어도 존재감이 희미하죠. 그래서 아름다움은 불편하다고, 편한 건 아름답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있어요.
ODS는 그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희망합니다. ‘적당함' 이라는 가치는 그 사이에 있어요. 분명히 낯설고 처음 보는 것인데 몇 분만 지나도 기묘하게 편안해지는 아름다움. 분명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한 ‘과도기' 가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이런 지점이 반드시 나타나거든요.
ODS는 누군가가 ODS의 가구를 보았을 때 순간 놀라기를 바랍니다. ‘이건 어디서 나타난 디자인이지?’ 이런 생각이 꼭 들었으면 해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왠지 오래 전 어렸을 때 보았던 것 같은 익숙함이 그 직후에 나타나길 바랍니다. 사용할 때 편안한 건 물론이고요. 이건 ODS의 가구만이 아니라, ODS를 디자인하는 모 기업 HYPHEN이 모든 공간을 디자인할 때 가지고 있는 원칙 같은 것이기도 해요. ‘낯설고 아름답지만 익숙하고 편안한 지점' 을 찾는 것. 쉽지 않지만, 가능합니다. 이 장면들을 컬렉션을 통해 보여드릴 거에요.